Q & A

복음, 알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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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 Q

자주 묻는 질문

복음과 관련하여 많이 문의하시고 궁금해 하시는 내용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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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의 짝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인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든것이 아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첫사람 아담에게 명하신 명령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동산에 있는 어떤 열매든 다 먹을 수 있지만 딱 하나 선악과를 먹지말라고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열매든 하나님께서 먹을 수 있게 하셨고 딱 하나 딱 한가지만 아담은 지키면 되는 것 입니다.
    정령 죽는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그 딱 한가지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은 900살이 넘도록 살았다라고 기록되어있지만,
    육신적인 죽음이 아닌 하나님과 아담사이에 ‘죄’ 말씀의 불순종한 죄가 들어외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죽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는 말씀처럼 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끊어놓았습니다.
    첫 인간인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해 아담의 자손들 즉 저희들은 죄인 즉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닌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우리는 매일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죄의 삯은 사망 곧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셨나요?
    정말 성경적인 믿음을 가지고 계시나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죽기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무엇이고 또 구원을 받았는지 먼저 확인 해보시는게 중요합니다.

  • 인류의 대표인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사람은 그 결과 태생적으로 악한 육신과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으며, 자신의 의지와 행동 모두가 타락하여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함으로 스스로 버림받게 되었으며,
    극복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악함으로 인해 인류는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지배하시고 책임지시고 계시며, 인간의 악함에 지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살게 하십니다.
    악한 인간들이지만, 이 세상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세상에는 고통이 너무 많습니다.
    불교식으로 얘기한다면, 고통의 바다 속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허우적대는 모습이 바로 우리 인간의 실상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극단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하나님은 이런 문제를 즉시 해결해 주시지 의아해 합니다.

    사실 고통과 고난은 인간에게 매우 절실한 문제인데, 하나님은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해주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고통을 겪게 된 근원적인 문제에 답변을 주시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것을 통해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신다고 하지요.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다시 오실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변을 얻어 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예수를 믿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택하신다면 그 악한자는 구원받게 됩니다.
    착한 사람도 택함 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구원은 마치 고아원에 있는 어린 아이가 입양되어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왜 나는 입양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없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간절하게 아버지 하나님께 입양되고 싶으신 마음이 있으시다면, 성경을 펴셔서 로마서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 분명히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의롭게 하시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십니다.
    의로워서 택함받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공정하지 못하겠죠? ^^

    아마도 질문자님은 기독교인들보다 더 정의롭게 살아가는 비종교인들이 왜 구원을 못 받냐는 질문이실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교인들보다 더 착하게 정의롭게 사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착하게 정의롭게 사시는 분들이 노년에는 대부분 기독교에 호의적으로 대하시고 교회도 잘 가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굳이 교회를 나가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안 믿겠다고 하시는 분은 왜 그런지 좀 궁금합니다.

    그리고, 착하냐, 악하냐 즉, 선과 악의 문제는 사람이 정할 수 없습니다.
    개개인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다르고 국가마다 다릅니다.
    수천년전의 멕시코 마야문명 사회를 가 봅시다.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는 것이 죄가 안 됩니다.
    당신이 그 사회에 가서 그러면 안된다고 외쳐봐야 당신만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과연 착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 성경에는 죽기 직전의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 일화가 나와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양 옆에 십자가 처형을 받는 두 명의 죄인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예수님한테,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할 때,
    다른 한 명이 그 사람을 꾸짖으며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니
    예수님게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39-43].

    첫째, 만일 세상의 악행이 선한 삶보다 더 좋은 것이라면, 악행을 누리다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더 이득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세상의 악행이 배설물과 같이 더러운 것이라면, 죽기 직전에 선한 빛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동정할 만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천국에 대한 소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 A는 하나님의 사랑속에서 살아왔고, B는 그 사랑을 모르고 살아왔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 B가 사랑을 깨닫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A가 축복해 줄 수 있는 일 같습니다.

    둘째,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와 같이, 세상에서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단지 죽기 직전의 회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심각한 불평등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는 똑같은 죄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이,
    선행을 충분히 저축해서도 아니고, 남들보다 죄를 덜 지어서도 아니고, 교회생활을 열심히해서도 아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죄를 범한 악인이라고 하더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부정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셋째, 너무도 용서하기 힘든 자를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다는 생각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드십니까?
    그러나, 실제적으로 누가 구원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심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상상하는 그 죄인은 구원을 못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은,
    타인에 대한 보증이 아니라, 스스로가 죄인이었던 나 자신에 대한 놀라운 축복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넷째, 우리는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할 능력이 너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기도를 알려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주기도문 중]."

  • 우리는 천국을 설명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태8:11]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태9:3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8:51]

    많은 사람들이 임사체험 (죽음 이후의 경험)을 통해, 죽음 너머에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하버드 메디칼 스쿨에서 의사이자 뇌과학자로 근무하던, 이븐 알렉산더 (Eben Alexander)는
    150여 편이 넘는 논문을 과학 학술지에 게재했던 세계적인 뇌의학의 권위자였습니다.
    그는 대장균성 박테리아성 뇌막염으로 대뇌 신피질이 완전히 기능을 멈춘 상태에서 7일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뇌기능이 완전히 멈춘 상태에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천국의 생생한 경험을 한 후에 그것을 책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4:18]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린도후서5:1]

  • 대부분 종교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종교이거나 선행이 자신의 과거 악행보다 많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적인 종교이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행동을 근거로한 종교가 아니다.

    인간은 각자 종교를 선택하고 믿을 수 있는 선택권과 자유와 책임이 있다.
    본인 (예수님)은 세상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했으며 창조주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사역하는 3년동안 죽음, 질병, 자원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과 기록이 있으며, 기적과 기록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했다.
    또한 이사야서 구약에서부터 기록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것이라 예언되었으며, 예언대로 행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

  • 모든 인간은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놓여있습니다.
    신의 존재 혹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자연인으로서, 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이 운명을 넘는 약속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약속입니다.
    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해주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 보장되는 것일까요?
    이 문제는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듯이,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두 측면을 동시에 볼 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절대적인 선이시기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죄가 없거나, 죄를 용서받은 후에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의식하던 그렇지 않던 죄를 짓고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저절로 지옥에 간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ㅠㅠ).

    둘째, 하나님이 정의만을 기준으로, 우리가 조금의 죄를 짓는것도 용서하지 않고, 심판하신다면, 우리 모두는 아마도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미 죄에 빠져있는 우리를, 인내해주시고,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통한 길입니다.
    인간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엄청난 계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치루신 예수님을 믿고, 사랑의 실천을 따르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보여주는 약속인 것입니다.

  • 사도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행적을 본 사도들이 있었기에 정경(진실된 성경)구분을 하지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모두 죽은 후 2세기에 이단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출몰하자 이들과 맞서 진실된 기독교 성경을 찾아야 했습니다.
    4세기 초 콘스탄티노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로 인정되면서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부들이 정경을 찾아나섰습니다.
    위대한 신학자 아타나시우스의 신약성경 27권 목록은 교회 안에서 거의 확정되어 히포 공의회에서 결정한 바였고 이것이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공인되었습니다.
    이후 419년 다시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성경목록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정경인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는 정확합니다.
    따라서 교부들이 성경목록을 확인하였기에 인위적으로 편집되지 않았습니다. 그렀기에 성경(정경)의 권위는 완전합니다.

    비록 원본이 현재 없으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수많은 사본들은 서로 보완을 해줍니다.
    구약성경 같은 경우 1947년 발견된 사해 사본이나 마소라 사본 등으로 대조하며 보완하는 데 기술이 거의 일치합니다. 또한 신약성경은 많은 양의 사본들을 통해 보존되어 왔습니다.
    신약성경은 약 25,000여 개의 다양한 사본들이 존재합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신약성경의 사본이나, 후대에 필사된 사본에 기술된 본문의 구성이 전에 고대 사본들과 기술된 구성과 완전히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세한 부분만 차이가 납니다.
    이것은 성경이 거의 원본 그대로 내려져 왔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 제자들이 모여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논의할 때,
    예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셔, 손과 발을 보이시고, 음식을 청하여 잡수시는 등, 육신으로 부활하셨음을 보이셨다.
    그 후,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에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예언을 설명하여 주시고, 제자들에게 부활의 증인이 될 것을 요구하셨다.

    예수님은 영이 아닌 육신으로 부활하셨음을 생선 한 토막을 제자들 앞에서 잡수심을 통해 생생하게 가르쳐주셨다.
    이러한 놀라운 기적이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성경에 모든 선지자를 통해, 이미 기록되었던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또한 친절히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다.

    성경은 첫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예언과 그 성취의 놀라운 증거인 것이다.
    예수님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신 말씀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부활의 사건을 생생히 이해하며, 성령충만으로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 구원은 우리의 착한 행실의 결과입니까? 아니면,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까?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운데,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예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녀로 택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1:4].

    우리를 자녀로 택해주신 은혜는,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로마서 3: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로마서 11:6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디도서 3:5)
    전적으로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죄를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6:1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로마서 3장 31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잘못된 믿음은, 내일 내가 잘못된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하게 되는 반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구원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생활을 맛보게 되는 우리는, 죄를 멀리하는 선한 생활의 거룩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기쁜 사실을 받아들일 때, 흔들림 없는 구원의 확신으로, 거룩한 기쁜 생활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야 합니다.
    기독교 안에 그리스정교, 가톨릭, 개신교가 공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각각 같은 하나님을 믿지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관계에 대해 천주교와 개신교가 각각 설명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천주교는 베드로라고 하는 1대 교황으로부터 로마가톨릭에 지속적으로 교황이 승계되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정통성이 거기에 있다고 얘기하지요.

    개신교는 중간에 가톨릭의 한 분파로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반대로 개신교는 원시 기독교에서 시작해 초기 300년 동안 순수한 모양을 갖추고 있던 기독교를 로마가 공인해 국교가 된 다음 정치적 색깔을 지니게 된 것이 로마가톨릭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통해 원래 기독교가 가르치던 본질을 되찾은 것이 개신교라고 합니다.
    이것이 역사적 시각의 차이입니다.

    이제 실제로 믿는 것에서의 차이점에 대해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개신교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고, 가톨릭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행위도 같이 따라야 하므로 믿음과 행위가 둘 다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개신교에서는 최종적인 권위가 성경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천주교에서는 최종적인 권위가 교회와 전통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점들이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입니다.

  • 아주 당혹스런 질문 중 하나가, 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교단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사실 한국에 교단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저도 참 못 마땅한 구석이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단이 형성된 것은 사실 개신교의 특성 때문입니다.
    개신교는 로마가톨릭과 같이 중앙에서 정치적으로 전체를 통합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세 가지 중요한 원리에 따라, 자신의 양심과 신앙의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개신교인들입니다.
    여기에서 세 가지 원리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믿음과 은혜에 근거해 자신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개신교인들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그것을 본질적인 차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비본질적인 면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점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교단이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전통의 교단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고, 또 이렇게 나뉜 것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성경을 보는 한계를 극복하기도 하고 상대방을 통해 배우기도 하는 그런 순기능적인 역할도 실제로 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성경에 접근함으로써 개신교는 신학적으로 굉장히 많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교단들 가운데 어떤 교단이 나뉜 것을 보면, 특별히 한국 내에서 교단이 갈라진 것을 보면,
    그 속에서 인간들이 정치적 싸움을 하다가 갈라진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자기를 부인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해서는 타협 할 수 없다, 한계가 있는 나의 지식에 근거한 믿음이지만 타협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좋은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역과 개인적인 어떤 이유들 때문에 교단을 갈라지게 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가르치는 것을 거꾸로 행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믿으면 됐지 그렇게 복잡하고 시끄러운 교회에 꼭 가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요즘 농담 삼아 ‘가나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합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잖아요. 교회에 ‘안 나가’는 신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정말 믿게 되면,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지식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이 땅에서 만들어 나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교회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이 시대에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에 대해 성경을 통해 정말 알아가게 되면,
    교회에 속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비록 그 교회가 흠이 있고 부족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